[인구 人사이드] “가족의 본질은 형태가 아닌 관계에 있다” - 비혼출산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이샘나씨
페이지 정보
본문
[인구 人사이드] “가족의 본질은 형태가 아닌 관계에 있다”
- 비혼출산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이샘나씨 이야기

2022년, 이샘나 씨(38세)는 덴마크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의료인으로서 보조생식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비혼 여성이 되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벽이 있었다. 법으로 금지되지 않았지만, 의료 현장의 관행이 더 강력한 장벽으로 작동했다.
그로부터 3년, 그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첫째 로빈이(34개월)와 둘째 제로미(7개월). 감염내과 전문의로 일하며 혼자 두 아이를 키운다. 그의 선택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예외’로 취급되지만, 그가 경험한 제도적 장벽과 사회적 변화의 과정은 한국의 저출생 정책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지점을 보여준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하 한미연)이 그를 만난 이유는 용기 있는 선택을 조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정책이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 인식은 바뀌었지만 제도는 그대로인 간극, 그럼에도 출산을 선택하게 한 동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결혼이 아닌 출산을 먼저 결심한 이유
“계기를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비혼출산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출산을 결심한 거예요.”
이샘나 씨의 답변은 명확했다. 30대 중반, 노산의 기준이 다가오면서 출산 시기를 고려하게 됐다. 결혼은 상황에 따라 언제 이루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출산은 신체적 조건과 의학적 타이밍이 있다. 불확실한 혼인-출산의 과정을 기다리기보다, 그는 실행 가능한 선택을 먼저 했다.
2019년 영국 클리닉에 문의하며 준비를 시작했으나, 2020년 팬데믹으로 계획이 중단됐다. 그 사이 2년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건 아닌지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 해외 이동이 다시 열리자마자 덴마크로 향했다.
2023년 첫 아이를 낳았고, 2025년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첫째만 키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외동에게 모든 걸 쏟게 될까 봐 걱정도 됐고, 무엇보다 이런 형태로 태어난 아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같은 과정을 거쳐 태어난 형제가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덴마크에는 아직 보관 중인 배아가 하나 더 있다. 조건이 허락한다면 셋째도 생각하고 있다.
덴마크에서 경험한 ‘당연함’의 차이
![]()
KBS [더 보다] “남편보다 아이”…비혼 출산하는 여성들 中, 2025.6.22
덴마크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유럽에서는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이 일반적으로 허용된다. 클리닉에서 혼인 여부를 묻지도 않았고, 정자 기증자 정보를 선택하는 과정도 체계적이었다.
“한국과 가장 큰 차이는 ‘당연함’이었어요. 누구도 제 선택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죠.”
물론 경제적 부담은 상당했다. 항공료, 체류비, 시술비를 포함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경제력이 출산의 조건이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출산했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였어요. 직장과 동료들의 배려로 휴가를 조정해 시술을 받고 올 수 있었는데, 레지던트 때였다면 비혼출산은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이는 비단 비혼출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있어 출산은 경력 초기에는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고, 경력을 가진 관리자 직급이 되면 조직 내 책임과 충돌한다. 적정 시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구조다.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
Q. 한국에서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 접근이 어려운 구조적 이유는 무엇인가요?
“법으로, 명시적으로 금지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 지침이 사실혼을 포함한 ‘부부’에게만 시술을 허용하고 있어요. 병원 입장에서는 학회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죠. 정자와 난자의 매매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요.”
의료인으로서 그는 이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법적 공백과 의료 지침 사이에서,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은 ‘불법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최근 들어서는 비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와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제도적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루어지고 있다.
제도적 장벽과 변화의 가능성
Q. 국회에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현행 모자보건법은 난임을 ‘부부 사이의 일’로 규정하고 있어요. 인권위가 법 개정을 권고했고, 비혼 여성에게도 보조생식술을 지원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죠. 법이 만들어지면 잠재 수요가 드러날 겁니다. 지금은 선택지 자체가 없으니까 ‘나는 결혼 안 할 거니까 혼자 살아야지’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가족은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법제화는 단순히 시술을 허용한다는 의미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사회가 이런 선택을 지지한다는 메시지거든요.”

최근 비혼출산 관련 조사를 보면, 결혼이 필수라는 생각은 계속 줄고 있다. 반대로 결혼 없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숫자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혼인 외 출생아 비율은 2024년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5.8%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생각의 변화와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있는 것이다. 이 간극이 출산 의향을 실제 출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샘나 씨의 경험이 이를 보여준다. 법으로 금지된 건 아니지만, 병원 현장의 관행과 관련 규정이 사실상 벽이 된다. 결국 경제력이 있는 일부만 해외로 나가 시술을 받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Q.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건 어떤가요? 비혼출산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점이 있나요?
“비혼출산이라서 특별히 더 어려운 건 없어요. 여느 워킹맘과 똑같아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 출산했기 때문에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고, 업무 조정도 가능한 위치에 있죠. 병원에 사내 어린이집이 있어서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고, 퇴근해 두 아이를 챙기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요.”
Q.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 형태를 어떻게 설명할 계획인가요?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를 활용할 생각이에요. 만화를 보면 싱글맘인 엄마 까투리, 엄마 아빠가 있는 가족, 아빠만 있는 가족이 모두 나오거든요. 우리 집은 엄마 까투리 같은 가족이고, 다른 친구 집은 다른 형태라고 설명하면 될 것 같아요.”
“아직 큰 아이는 ‘우리 집이 다르다’는 인식 자체가 없어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나중에 아이가 이상하게 느끼거나 질문할 때는, 그 상황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슬픔 때문인지, 호기심 때문인지에 따라 답변이 달라져야 하니까요.”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이샘나 씨는 지난해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얼굴과 개인사를 드러낸다는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 이유를 묻자 “이웃이 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 의미는 명확하다. 비혼출산을 특별한 사건이 아닌, 공동체 안의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비혼출산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보면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기 쉬워요. 하지만 처음부터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이면 다르죠. 교회든 동네든, 저를 먼저 알고 나서 나중에 배경을 알게 된 분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실제로 주변에서는 “형제가 있어야 좋지”라며 둘째 출산을 축하해준 사람들, 아이가 예쁘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이 특별히 열린 마음을 가져서가 아니라, 이미 관계가 먼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족 형태가 흔해져야, 나중에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그래서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인 중심에서 출산·양육 중심으로
“저출산의 원인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겠어요. 과거 더 가난했을 때도 아이를 많이 낳았잖아요. 지금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게 문제죠.”
이샘나 씨의 진단은 한미연이 주목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출생 정책은 결혼 여부가 아니라 출산과 양육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이를 낳고 싶다면 낳을 수 있는 사회, 외부적 요인 때문에 부모가 될 선택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결혼했는지를 기준으로 정책 지원을 나누는 방식은 달라진 사회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
지난해 한미연이 비혼 동거·출산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에서도 현실이 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인 여부에 따라 보호자 인정, 보조생식술 지원, 출생신고 절차 등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런 제도적 제약은 부모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아이의 성장 과정에도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란 코어 가치가 확실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사랑, 신뢰, 믿음—이런 핵심 가치로 서로를 묶어주는 게 가족의 본질이라면, 형태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는 거죠.”

최근 조사 결과, 비혼출산을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제도가 바뀌면 그에 맞춰 출산 선택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비혼 출산을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앞으로 늘어날 수 있는 하나의 경로로 보고, 미리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한미연의 생각이다.
이는 비혼출산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혼출산은 이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며, 공동체로서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핵심은 간단하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태어난 모든 아이와 그 가족이 동등하게 보호받는 것. 이 원칙이 실현될 때,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는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샘나 씨가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특별한 대우가 아니에요. 그냥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죠. 그게 모든 부모가 원하는 거잖아요.”
(인터뷰 및 작성 : 유혜정, 이윤서)